환자는 중앙부처의 고위직공무원으로 건장한 체격에 사람 좋아 보이는 남성이었습니다. 불안장애는 10년 전 해외유학 중에 발생하였습니다. 진단명은 강박불안증이었습니다. 당시 과도한 학업과 객지생활의 스트레스로 불안장애가 생겼습니다. 수개월 전 승진시험을 앞두고 불안장애가 악화되었습니다. 양방 정신과에서 항불안제, 항우울제, 신경안정제를 복용하였으나 잠시 좋아질 뿐 치료되지 않았습니다.
별것 아닌 시험인데도 공부를 하려면 극심한 불안감, 초조감이 엄습하면서 머리가 조여지는 듯 몽롱해지고 몸이 구름 위에 둥둥 떠 있는 듯 비현실감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때 책을 보면 활자가 흩어져 이해가 안 되고 글이 읽혀지지 않았습니다, 불면, 옅은 잠, 자다가 자주 깸, 가슴 두근거림, 열 달아오름, 식은땀, 입마름, 식욕부진, 변비 등이 동반되었습니다. 결국 시험을 포기하게 되었으나 불안장애는 여전히 남아 일상적인 업무, 대인관계, 사회생활에 장애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본원에서 오랫동안 정신신경과 환자들을 치료한 결과 환자분들은 대개 심성이 착하고 마음이 여리고 영혼이 맑은 분들이 많았습니다. 어쩌면 이 혼탁하고 사악한 세상을 살아가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세상이 그들을 병들게 한 것은 아닐지요.
환자에게서는 불안장애에 자주 쓰이는 약재인 용골과 모려의 증상이 보였습니다. 일주일치 한약을 복용하고 환자의 불안장애는 크게 호전되었습니다. 불안하거나 초조하지도 않고 마음이 느긋하고 편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약을 복용한 날부터 잠을 푹 자게 되었고 입맛도 돌고 배변도 원활해지면서 마음에 즐거움과 희망이 생겼다고 합니다.
환자의 불안장애는 2달이 지나지 않아 모든 증상이 소실되었고 재발방지를 위해 한 달 치를 더 복용하고 폐약하게 되었습니다. 이분은 고위직공무원임에도 권위적이지도 않고 명리를 탐하지도 않는 소박한 심성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이분에게는 삶의 목적이 명리가 아니라 행복일진대 세상의 풍진에 흔들리지 않는 조용한 곳으로 낙향하기를 권유했습니다. 의사로서 이분이 병이 재발되지 않으려면 외부로부터의 악화요인이 제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몇 달 동안의 숙고 끝에 이분은 낙향을 결심했고 낙향하는 날 찾아와 밝고 홀가분한 표정으로 감사와 작별의 인사를 전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