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교수의 난치병 한약치료 이야기 ‘우울증’

2022-04-12 | 우울증

노의준 경희한의대 겸임교수, 난치병한약치료전문 할아버지한의원장

우울증, 우울증성 장애는 기분장애의 하나로 우울하고 저조한 감정상태가 주축이 되어 일어나는 일련의 양상을 말합니다. 우울증은 증상의 정도와 병정 기간에 따라 주요 우울증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주요 우울증성 장애는 적어도 2주 이상 지속되는 우울, 저조한 기분 혹은 기쁨과 흥미의 상실이 특징입니다. 기분부전장애는 최소한 2년 이상 하루에 대부분 동안 주요 우울증성 장애보다 증상의 정도가 경한 만성적 우울증상이 존재하는 장애입니다. 우울증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약 2배 이상 많고, 주요 우울증성 장애의 평생 유병률은 여성이 10~25%, 남성이 5~12% 정도입니다. 

우울증의 원인으로는 생물학적 원인과 사회심리학적 요인이 있는데, 우울증은 우울증을 가지고 있는 직계 가족에게서 다발합니다. 우울증에서는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세로토닌 등의 농도와 활성도가 낮습니다. 세로토닌의 변화는 우울증의 중요한 요소로 자살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회적 위험요인으로는 부모의 이른 상실, 부모의 별거, 양육방식의 문제, 성문제, 약물남용, 가난, 낮은 사회적 계층, 제한된 사회적 지지, 신경증적 병전인격,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현재의 사건 등이 있습니다. 남성의 경우는 업무의 문제가 여성의 경우는 가정의 문제가 우울증과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울증 초기에는 정서적 공감이 없어지고 기분이 좋지 않으며 다소 현실감이 소실되어 자신이 왠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병이 진행되면 슬픈 감정이 점차 표정과 태도에서 뚜렷이 나타납니다. 가면을 쓴 것처럼 무표정하거나, 힘든 표정을 짓고, 희망이 없게 느껴지고, 침체되어 늘 하던 일도 매우 어렵게 느껴지고 자신이 없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기분의 저조는 아침에 심하고 저녁에는 가벼워지는 일종의 변화를 보입니다. 병이 더 심해지면 열등의식, 절망감, 허무감이 생기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그 결과 자살의욕과 시도가 생깁니다. 자살은 우울증의 가장 위험하고 흔한 증상으로, 우울증이 심한 시기보다 회복기에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주요 우울증성 장애 환자의 자살 위험률은 일반인에 비해 약 30배 정도 높습니다. 

사고장애로 기억력 감퇴, 판단력 저하 등이 나타날 수 있으며 사고의 흐름이 느려져 말이 느려지고 대답을 간단하고 작은 목소리로 말하게 됩니다. 주요 우울증성 장애는 치매와 동반 발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장 흔한 신체증상으로는 수면장애가 있는데, 한번 깨면 다시 잠들기가 어려운 후기불면이 주로 나타납니다. 체중 저하, 식욕부진, 성욕감퇴, 변비, 소화불량, 피로감 또한 흔하게 나타납니다. 

우울증을 한약으로 치료한 필자의 증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남 58살 170cm 77kg 서울시 노원구 거주

환자는 6년 전 IMF 이후 (내원 시기 기준) 사업체 부도로 극심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아왔습니다. 현재 가족과 헤어져 홀로 지내며 막노동으로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형편입니다. 같은 교회 다니는 신도분이 약값을 대신 내주기로 하고 내원, 신도분의 간곡한 부탁으로 사실상 무료로 1년간 한약을 투여하게 됐습니다.

환자는 사업체 부도 이후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뒤, 가슴이 두근거리며 뛰고 답답해지고 불안, 초조해졌다고 합니다. 특히 밤이 되면 두려움이 엄습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노랗게 보이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어지럽다고 합니다. 정신과에서 우울증, 불안장애로 진단, 수년 전부터 신경안정제, 수면제를 복용하고 있었습니다. 안정제를 먹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고,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전혀 잠을 못 잔다고 합니다.

환자분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육체적 과로로 인해 우울증 외에도 요추디스크, 퇴행성 슬관절염, 오십견 등 많은 질환들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은 요추디스크(요추추간판탈출증)로 인한 허리 다리의 통증이었습니다. 환자는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죽을 듯이 아프다(VAS 7이상)’라고 표현했습니다. 요추디스크의 경우, 20년 전 1987년 1차 수술을 했고 2011년 재발해 2차 수술을 했는데 한 달 전 노동을 하다가 다시 재발하게 됐습니다. 병원 진단 상 L3, L5 디스크가 탈출, 병원에서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으나 경제적으로 어려워 수술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내원 당시 환자는 우측 허리부터 다리까지 쑤시고 아프고 차고 시린 증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측 다리 살이 빠져 매우 가늘어져 있었고 힘이 없다고 했습니다.

난치병의 한약 치료원리 중에는 ‘연관병증(associated symptom)’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A, B 두 가지 질병을 동시에 앓고 있는 환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환자는 A를 치료 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한약을 투여했더니 A가 치료될 뿐만 아니라 B도 같이 치료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난치병 한약치료의 임상에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이때 질병 A, B는 하나의 한약 처방으로 동시에 치료되므로, 단순히 동반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관되어 있다해 필자는 이를 ‘연관병증’이라고 부릅니다.

난치병의 한약치료 원리는 먼저 병을 보지 않고 몸을 보고 치료한다고 했습니다. 한약은 우리 몸의 자연치유력을 고양시켜 우리 몸 스스로가 우리 몸의 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한약으로 고양된 우리 몸의 자연치유력은 우리 몸에 있는 여러 가지 질병들을 동시에 치료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A, B라는 두 가지 질병이 동시에 치료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한약을 투여해 A는 치료가 되는데 B는 여전하다면 A, B는 서로 연관성이 없는 단순히 동반되어 있는 질병입니다. 각각 다른 한약처방으로 치료되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하나의 한약처방으로 A가 치료 되면서 B도 같이 치료가 된다면 A, B는 단순히 동반되어있는 질병이 아닌 서로 연관되어있는 연관병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환자의 경우 우울증, 불안장애라는 정신신경질환과 요추디스크, 퇴행성 슬관절염, 오십견 등의 관절질환이 동반돼 있었습니다. 필자는 이 환자의 우울증, 관절질환 두 가지 질병이 단순히 동반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연관돼있다고 진단했습니다. 하나의 한약 처방으로 두 가지 질병은 동시에 치료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대개 신경정신과질환은 비교적 복잡하고 어려운 질병이고 이에 비해 관절질환은 비교적 간단하고 쉬운 질병입니다. 한 가지 처방이 두 가지 질병을 동시에 치료한다면 복잡하고 어려운 질병을 진단하지 않고 대신 간단하고 쉬운 질병을 진단해 들어가 적합한 처방을 내는 것이 더 쉽고 편하겠지요.

연관된 두 가지 병증을 진단할 때 어려운 질병을 진단하지 않고 쉬운 질병을 진단해 적합한 처방을 내는 요령입니다. 이것이 난치병 한약치료에서 연관병증을 이용한 치료원리입니다.

이 환자는 추위를 많이 타고 손발이 찹니다. 특히 오른쪽 다리가 아프고 매우 차고 시리다고 했습니다. 환자가 추위를 타고 손발이 차면 대개 계지, 오수유 등의 약재를 많이 씁니다. 이 환자는 오수유를 써야 할 환자였습니다.

오수유 (사진=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k13321&logNo=220087849817) 

오수유는 쌍떡잎 식물인 운향과에 속하는 나무의 열매로, 추위를 타고 손발이 차며 특히 아랫배가 차고 아픈 증상을 치료하는 효능이 있습니다. 중국 전국시대에 오(吳)나라는 초(楚)나라에게 수유(茱萸)를 조공으로 보냈는데, 배가 차갑고 몹시 아픈 증상으로 고생하던 초왕이 이를 복용하고 쾌차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초왕이 수유를 오나라에서 가져온 귀한 약재라 하여 이 약재를 오수유라 부르게 했다는 고사가 있습니다. 

환자는 근 일 년간 한약을 복용했습니다. 우울증, 불안장애와 불면증은 복용 기간이 6개월이 경과하는 시점에서 소실됐습니다. 환자는 생활에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완치된 것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관절질환 역시 매우 호전됐습니다.

환자는 형편상 복약 중에도 매일 막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예전에는 하루 종일 중노동을 하고 귀가하면 통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복약 후 통증이 견딜만할 정도로 개선되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육체노동이라는 악화요인이 제공되면 통증이 악화되는 패턴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약을 장복하여, 양약을 복용하지 않고도 통증이 생활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개선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생활에서의 악화요인이 제거되고 완화요인이 제공되어, 몸이 총체적으로 고양되어야만 병도 궁극적으로 치료될 수 있다는 원리는 한약치료의 특장이자 한계일 수 있습니다.

출처 : http://it.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2/17/2015021785048.html